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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로컬페어링클럽, 관계의 페어링

 로컬페어링클럽, 관계의 페어링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원주 명륜동에서 원주천을 건너면 봉산 아래 ‘우물시장길’이라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마을을 만난다. 이 마을은 맞은편 높은 아파트들과는 상반되게 세월의 흔적을 품은 낮은 집들이 이어져 있다.

 

우물시장길로 들어서면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과 주택으로 내려가는 길로 갈라진다. 베이커리카페 ‘르브레노’ 옆 골목에서 골목을 돌아 주택 쪽을 향해 돌아 내려가면 ‘요새’를 만날 수 있다. 봉산동 ‘요새’에서는 ‘로컬페어링클럽’이라는 이름으로 9월부터 매달 원주의 창작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컬페어링클럽’은 봉산동의 ‘요새’에서 미몽과 ㈜옆집사람의 작당모의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저마다의 고유함을 가진 원주의 이웃 창작자들을 소개한다. 프로젝트 이름에서 드러나듯 전시와 페어링의 조합이 신선하다. ‘페어링’은 짝을 맞추다; 궁합을 맞추다; 연결을 짓다;라는 뜻을 가지며, 이번 프로젝트에서 페어링의 뜻은 창작자 간의 협업이라 할 수 있다. 개별의 고유함을 가졌으나, 비슷한 결을 나누는 지역의 로컬브랜드와 창작자를 연결짓는다. 이들은 한 달간의 협업 과정을 거쳐 전시를 선보이며, 전시는 매달 새로운 ‘팝업’ 전시로 이어진다.

 

창작자와 브랜드의 페어링, 창작자와 나의 페어링, 작품과 나의 페어링처럼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관계의 합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함께 그 관계를 찾아볼 수 있도록 전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0월의 페어링, ‘골목을 돌면

취재를 진행한 전시는 10월 2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이어졌던 ‘골목을 돌면’이다. 10월의 로컬페어링클럽에서는 원주의 세 명의 사진작가와 두 가게, 큰 골목이 함께했다.

 

공간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전시 서문이 적혀있고, 안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면 공간 곳곳에 작품이 나타나는 듯하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어느덧 깊은 겨울로 들어가고 있지만, 요새를 찾았던 날은 청명한 하늘과 아린듯한 바람이 부는 11월 어느 날이었다. 전시 공간 가운데 놓인 난로와 주전자가 공간을 따스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렸을 때 보던 모습을 오랜만에 마주하니 아른하게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떠오른 것만 같았다.

 

 

전시 공간 안쪽으로 이동하는 동선 중 반지하 공간에는 전시 소개 영상이, 고개를 올려다보면 옥탑 공간에 우물시장길에서부터 촬영한 오택 작가의 사진이 비춰지고 있었다. 입체적인 공간감이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공간은 오택 작가의 전시 공간이다. “오택은 아버지와 머물던 2023년의 봄을 떠올렸다. 우물시장에서 출발해 원주천을 거쳐 오래된 이발소 건물에 도착한다. 당신의 에스프레소잔과 종이에 남긴 ‘살아있으라’는 말이 골목과 우리 모두에게 고스란히 수신되기를 바란다.”라는 서문의 말을 기억하면서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오택 작가와 리미티드커피의 페어링이다.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공간 곳곳을 탐색하며 다양한 시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시장의 화이트큐브가 아닌, 오래된 주택이 주는 공간의 느낌과 창틀과 가구 등 다양한 집의 요소들, 그리고 사진의 위치가 편안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에 관람자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만드는 듯했다.

 

 

이어지는 공간은 웨이킴 작가의 공간이다. 웨이킴과 여행자의 집 소로·작은평화의 페어링이다. “웨이킴은 생애 ‘첫 가게’를 회상하며 아이의 눈에 골목의 미래를 투영했다. 줄곧 살아온 동네, 원주에 내려앉은 어린시절의 기억들 곧 또 다른 삶의 유산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소개한다. 서문의 소개처럼 아이의 시선으로 사진이 되어있어 낮은 벤치의자에 앉아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작은 공룡 인형이 상징적으로 아이의 시선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리고 한켠에, 책 사이사이 사진이 함께 있어 책을 넘겨보며 사진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음 사진에서 보이듯 책 옆에 놓인 포크에 스파게티면처럼, 필름을 포크에 말아놓은 점이 전시의 트렌디한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공간 곳곳에 전시 요소들이 있어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재미있게 전시를 보았다.

 

 

옆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비주얼이모션 작가의 전시공간이다. 중앙동의 노포들을 필름사진을 통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비주얼이모션은 평소와 다름없이 골목으로 나섰다. 직접 눈으로 보는 풍경과 작가가 필름으로 담은 장면은 이쪽과 저쪽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장소같아 보인다. 필름이 가진 촬영 방식의 차이도 있겠지만 찰나에 담긴 순간을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골목이 가진 느림의 미학과 일맥상통한다. 으스스한 밤거리는 어느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 관객과 또 다른 기억을 공유한다.”

 

 

작가의 공간 곳곳에 필름과 필름마운트가 배치되어 있었다. 사진이라는 결과물에 앞서 존재하는 실물의 감각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관람객이 직접 필름마운트를 창가에 비치는 햇빛을 통해 바라보며 인화된 사진 이전의 사진으로 혹은 그 공간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전시 동선을 따라 공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지막 공간에는 엽서와 방명록이, 소정의 전시관람료를 지불할 수 있는 안내서가 놓여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공간 가득히 작품이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고 텍스트를 배제하여 공간과 사진에 집중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또한 전시에 방해되지 않았다. 오래된 공간 위에 자연스럽게 전시가 얹어져 있는 듯했고 따뜻한 빛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과 공간과 사진이 어우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원주의,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원주의 카페와 식당과 골목에서 생겨나는 평범하고도 하나뿐인 이야기가 머무르는 공간이라고 느껴졌다.

 

기획자 ‘미몽’과의 대화를 짧게나마 요약하여 덧붙인다. 원주에서 새로움을 만들게 된 과정과 의미들에 대해 여쭤보았다. 전시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깊게 전달되길 바란다.

 

Q1. 전시에서 ‘페어링’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신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자기 브랜딩이 잘 되어있는 공간들이 원주에 많은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단순히 상점으로 소비되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기 이야기나 브랜딩을 잘 풀어놓으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들이 창작자와 동일하다고 느껴져서 창작자로서 모셔볼 수도 있겠다 싶었고, 흔하게 쓰이는 로컬이라는 단어를 완화할 만한 새로운 단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Q2. 공간이 소비되는 것보다 어떤 가치를 함께 고민하길 바라셨나요?

주인이 가진 어떤 가치관이나 그걸 판매하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그걸 만들면서 했을 고민들 이런 것들이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가게나 브랜드들을 선정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한이용원이 리미티드커피 공간이 되고 2층에 바버샵을 한다는 것이 건물이 가지는 이야기를 잘 활용하시는 분이 가져가셔서 기뻤어요. 그리고 소로 같은 경우는 여행을 다니면서 힐링받았던 자신의 소울푸드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역할이 뛰어나시다고 생각했고, 캐릭터도 너무 귀여우시고. 그리고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도 좋았어요. 아버님이 종종 다니시던 카페라든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하이키, 2023)

취재 전에는 ‘요새’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 같았다. 전시를 보고 돌아가는 길에는, 우물시장길이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처럼 보였다. 원주천을 따라 봉산 밑 낮은 집들이 이어져 있었고, 작은 텃밭을 가진 이들의 삶이 보였다. 원주 곳곳에 이런 작고 예쁜 마을이 얼마나 더 많을지 상상해보았다.

 

창작자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 더 많은 ‘작당모의’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새롭고 익숙한 만남이 일어나기 때문에 작고 소중한 새로움이 피어나는 공간이 더 가까이 있길 바란다. 12월까지 이어질 이번 프로젝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어보길 바라본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소식을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다.

 

 

주소: 봉산동 ‘요새’(원주시 봉산동 우물시장길 77)

자료출처: ‘로컬페어링클럽’ 인스타그램(https://www.instagram.com/localpairingclub/)

 

글.사진/ 원주문화웹진 청년기자 조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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