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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 – 종군기자 맥스 데스포 사진전

여전히 끝나지 않은 한국 전쟁

– 종군기자 맥스 데스포 사진전

 

한국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 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벌어진 이 전쟁으로 한반도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이어진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인식은 점차 ‘하나의 분단국가’가 아닌 ‘독립된 다른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 평화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2023 통일의식 조사’ 중 ‘북한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도 하나의 국가다’라는 문항에 대해 ‘아니다’라는 응답이 15.6%로, 2020년 8%, 21년 13.3%, 22년 9.3%에 비해 증가했다. 반면 ‘그렇다’는 응답은 올해 49.9%로, 2020년 65.3%, 21년 52.9%, 22년 56.4%에서 크게 하락하여 지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절반을 넘기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자칫 한국 전쟁이 ‘휴전’이 아닌 ‘종전’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를 지닌다. 통일에 대한 견해 차이는 다양하지만, 한국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고 우리가 참혹했던 전쟁을 겪고 여전히 전시 상황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한국 전쟁을 기억하고 지금의 한반도가 되기까지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시기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진’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 속에서 과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서로에게 총을 겨눈 그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드는 자가 있다. 바로 ‘종군 기자’다. 종군 기자는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투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를 뜻하며, 한국 전쟁에서도 많은 종군 기자가 활동하였으며, 그중 17명이 순직하기도 했다. 그 종군 기자들 사이에는 한국 전쟁에서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맥스 데스포가 있었다.

 

故 맥스 데스포의 2015년 모습 (사진=AP연합뉴스)

 

맥스 데스포는 AP 소속 기자로 2차 세계 대전을 포함하여 여러 분쟁 지역을 누비고 1950년 6월, 10년 만에 고향 뉴욕으로 돌아왔다. AP는 노고에 대한 배려로 그를 플로리다 지사로 발령했지만, 그는 한국 전쟁이 막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한국으로 떠난다. 그가 한국에 도착한 시점은 북한군이 서울로부터 약 30km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던 때였다. 종군 기자의 ‘취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역시 존재하지 않던 한반도에서 그는 최전방 부대를 따라다니기로 하고 군인과 다름없는 혹독한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그는 그 상황 속에서 굶주림과 공포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고, 그중 사진 <대동강철교>는 그가 퓰리처상 수상을 하도록 한다.

 

맥스 데스포 사진전이 열린 <치악예술관>

 

원주문화재단은 한국 전쟁의 현장성과 이야기를 담은 <맥스 데스포 사진전>을 원주 치악예술관에서 지난 8일부터 18일까지 주관했다. 치악예술관 지하에 위치한 전시실에서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무료 입장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1950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의 한국 전쟁을 담은 맥스 데스포의 사진들을 이야기와 함께 들여다보았다.

 

<맥스 데스포 사진전>

 

원주문화재단에서 제공한 안내서를 받고 들어서자, 맥스 데스포가 현장에서 군인들과 피란민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이 겪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자세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이 관람하기에도 도움이 될 만한 상세한 설명이 있어 더욱더 관람객 친화적인 전시로 느껴졌다.

 

 

4가지 대주제로 나뉘어진 맥스 데스포 사진전

 

전시는 ▲서울수복 ▲평양탈환 ▲중공군의 개입 ▲흥남 철수 4가지 주제로 구분했다. 전시 작품의 배치 역시 시대 순서에 따라 이동하면서 시기의 변화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평양 탈환’과 ‘중공군 개입’과 관련된 사진이 중심적으로 배치되면서 전쟁의 긴박함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퓰리처상 수상작 <대동강 철교>

 

위 사진은 ‘중공군 개입’ 부분에 전시된 <대동강 철교>이다. 1951년 맥스 데스포를 퓰리처상 수상자로 만들어 준 이 사진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가 결정된 이후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철교를 폭파한 이후의 상황을 담았다. 아직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은 무너진 철교를 건너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맥스 데스포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미군을 따라 압록강 근처까지 도달했다. 중공군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평양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동강 철교는 미군들이 중공군의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이미 폭파시켜 놓았다. 나를 비롯한 종군기자들은 지프차를 타고 미군이 부설해 놓은 주교를 건넜다. 그러나 대동강 북쪽의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얼어붙은 대동강의 얼음을 타고 건너려 노력했지만, 얼음이 약해 어려웠다. 그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을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처참한 현실을 담아내고자 얼어붙은 15m 교각 위를 올라 사진을 찍었다. 추운 날씨 속에 손이 얼어 고작 8장의 사진밖에 찍지 못했지만, 이러한 그의 집념이 있었기에 그는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맥스 데스포의 인터뷰 및 소개 영상실

 

 

전시 중간 부분에는 영상 시청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맥스 데스포의 인터뷰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그의 심정이나 찍는 순간의 현장감을 드러내는 영상이 재생되었다. 사진이나 글로만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과 사진 기자 맥스 데스포에 대해 궁금한 관람객들이 더 자세하고 편하게 정보를 접하는 데에 있어 도움을 주는 듯했다.

 

<맥스 데스포 사진전> 전경

 

또한, 전시는 어두운 공간에 조명을 이용하여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전시실의 넓은 공간으로 인해 시대 순서에 따라 이동하면서 주제의 구분을 명확히 느끼고 체감할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 중이던 신지영(37세, 주부) 씨는 “아이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서 방문했는데 좋은 교육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맥스 데스포 사진전>은 우리가 앞으로 바라보아야 할 ‘한국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전시다. 전시를 순서에 따라 관람하다 보면 마지막으로 작품 <눈 무덤을 헤치고 나온 손끝>을 볼 수 있는데, 이 사진 위에는 사진 기자 맥스 데스포가 한 말이 적혀있다. “한국인들은 전쟁의 시작만 기억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글.사진/ 원주문화웹진 청년기자 이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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