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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당신을 환대하는 극장 : 창작극장에 대한 몇 가지 시선

당신을 환대하는 극장 : 창작극장에 대한 몇 가지 시선

 

 

# 극장에 대한 몇 가지 기억

멕시코시티 외곽에 있는 작은 동네 코요아칸은 멕시코의 국보로 여겨지는 화가 프리다 칼로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유명하다.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조차 없는 프리다 칼로의 생가이자 뮤지엄인 파란 집(MUSEO FRIDA KAHLO), 오래된 주택을 책방이자 문화공간으로 개조해 2014년 국제 건축상(International Architecture Awards)을 수상한 엘레나 가로 문화센터(Centro Cultural Elena Garro), 2010년 서울 국제연극올림픽에서 큰 호평을 받은 멕시코 극단 떼아뜨로 루에아 데 솜브라(Teatro Liuea de Sombra) 등 많은 극장과 창작공간, 예술단체들이 코요아칸에 모여 있다.

2017년 한-멕시코 공동제작공연을 위해 멕시코에 체류하면서 며칠간의 멕시코시티 극장 리서치를 계획하게 되었다.

어느 날, 코요아칸의 한 오래된 극장의 문을 두드렸다,

멀리 한국에서 온 기획자임을 소개하고 조심스레 극장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들은 주저 없이 불 꺼진 무대를 밝혀주고, 다양한 조명과 음향 장비들을 작동시켜주었으며, 백 스테이지와 분장실을 오픈하고 극장의 오랜 역사를 들려주었다.

바다 건너 찾아온 미지의 손님을 위해 기꺼이 문을 활짝 열어준 극장,

그들의 환대는 오래토록 남아 극장의 의미를 고민하고 되새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Teatro coyoacán Enrique Lizalde 엔리케 리잘데 극장

 

# 극장에 대한 몇 가지 기억

당시 방문했던 멕시코시티의 여러 극장들은 ‘책방’이 함께 운영된다는 특징을 발견했다. 주로 극장의 입구에 위치해있거나 외부로 연결되어 있는 책방은 연극과 관련한 서적 이외에도 다양한 인문학 서적, 잡지, 그림책, 디자인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코요아칸에 있는 200석 규모의 고풍적인 공간이 매력적인 엔리케 리잘데 극장(Teatro coyoacan Enrique Lizalde)은 극장 외부에 책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복합문화공간 CINAL TONALA은 극장 겸 영화관, 레스토랑 겸 카페, 작고 운치 있는 예술책방이 한 자리에 모여 있어 멕시코시티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이다.

극장과 함께 있는 책방은 공연을 보기 전 관객들이 잠시 들를 수 있는 쉼터이자, 예술에 대한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책방이라는 특별한 공간 매개체를 통해 멕시코시티의 극장들은 관객과 더욱 가까워지는 듯하다.

 

CINAL TONALA 내에 위치한 예술책방

 

 

# 극장에 대한 몇 가지 단상

동시대 극장들은 단순한 상연의 기능을 넘어, 자체 창/제작공연, 예술가 창작지원, 문화예술교육, 지역의 문화아지트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예술가들을 위해 다양한 실험적 무대를 마련하고 관객과 매개하는, 그 자체로 ‘창작을 하는 극장’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고전, SF, 환경, 낭독 등 명확한 주제와 형태, 컨셉을 지니고 여러 예술가 및 예술단체의 창작을 지원하는 극장, 다양한 가치를 지닌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업을 페스티벌 형식으로 엮어 소개하는 극장, 신진 예술가들의 작업을 초반 인큐베이팅부터 창작 과정 및 공연까지 중장기 프로세스로 지원하는 극장, 그리고 연출가, 배우, 작가 등 예술가의 역할을 집중 포커싱하여 그 역할에 맞춘 창작 전반을 지원하는 극장도 있다. 연출가의 신작 쇼케이스 제작을 지원하고 관객과 매개함으로서 작품이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첫 장을 마련하는 연출가전展, 배우 1인이 스스로 작품 선정부터 연출, 구성까지 전 창작 과정을 주도하는 배우전展 등 동시대 예술가들의 다양해지는 창작 방식을 극장의 기능과 연결하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있다.

또한 극장은 예술 공간임과 동시에 나아가 교육, 돌봄의 공간까지 되기도 한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 센트로에 위치한 떼아뜨로 라 프로아(Teatro La Proa) 극단은 2003년 이후, 오래된 기차역을 개조한 자체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제작하는 떼아뜨로 라 프로아의 극장은 동시대의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공연을 소개하는 플랫폼이자 쿠바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워크숍의 거점, 쿠바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공간 등으로 다양하게 기능하고 있다.

특유의 자연환경을 활용해 예술가들의 다양한 영감을 일깨우는 극장도 있다.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밀림 지역에 위치한 스튜디오 반자르밀리(Studio Banjarmili)는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미로토가 직접 짓고 운영하는 공연장이다. 야외 공연장을 둘러싼 거대한 계곡은 실제로 물이 흐르고 있어 그 자체로도 작품의 훌륭한 배경이 된다. 연극, 전통예술, 음악 등 우수한 공연들을 지역민에게 소개하고 동시대 공연예술 컨퍼런스, 전문가 렉처 프로그램, 국제 아티스트-인-레지던시 등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도네이사 스튜디오 반자르밀리

쿠바 Teatro La Proa

# 다시, 극장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동시대 공연예술의 흐름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만큼, 극장의 역할과 기능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예측할 수 없이 변주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관객과 잘 매개할 수 있도록, 극장들은 스스로의 고민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극장이 마치 한 명의 예술가처럼, 자율적인 창작의 방향성을 지니고 주체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듯하다.

극장이 예술가들을 위해, 관객을 위해 구상하는 다방면의 창/제작 프로그램이 지역 공연예술계를 풍성하게 함에 틀림없다. 이러한 민간 극장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지속되고 파생될 수 있도록 공공의 영역에서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이끌어준다면 분명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또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리두기로 인해 감소한 관객들이 극장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공공-민간 간 소통할 수 있는 홍보 플랫폼 혹은 관객을 연계할 수 있는 협력 체계가 있다면 극장 활성화에 큰 기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극장은 늘 예술이 무거운 시대임에도,

예술을 지속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극장은 늘 예술이 어려운 시대임에도,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언제든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극장은 예술가와 관객 모두를, 서로를 환대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불 꺼진 무대를 밝혀준,

코요아칸의 어느 극장처럼.

 

글.사진/ 원주문화웹진 외부필진 차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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