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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지역에서 ‘글쓰기’로 먹고산다는 것

[2023, ‘원주의 엄마 예술가시리즈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지역에서 글쓰기로 먹고산다는 것


필자는 2023년 원주문화재단 웹진의 외부 필진으로,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원주의 엄마 예술가] 코너를 통해 원주에서 엄마로, 예술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소개해왔다. 내년에도 이 시리즈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번 호로 1부를 마무리하려 한다. 11월호는 원주에서 엄마 예술가로 1인 출판사 ‘생각의뜰채(Dayspring)’을 운영하며 작가로, 기획자로, 강사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직업을 결정하는 기준은 늘 전공과 무관하지 않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등단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내가 있는 일터에서 마주한 무수한 사건들이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보다 더 생생한 경험을 주었다. 때론 짜릿할 만큼 기뻤고, 때론 몸과 마음이 지칠 정도로 힘들고 슬펐던 그 모든 일의 경험이 지금 내가 운영하는 ‘생각의뜰채(Dayspring)’의 시작이 되었다.

 

2021년 10월 1일, 출판사로 신고한 ‘생각의뜰채’는 ‘로컬, 일, 여성을 주요 테마로 하는 콘텐츠 회사’이다. 이 회사는 직원이 0명, 곧 내가 대표이자 직원인 1인 기업으로 2년째 운영 중이다. 올해 5월에는 단계동에 작업실이자 책과 문구류를 파는 큐레이션 편집숍을 개업하면서 ‘Dayspring’이라는 영문 이름을 추가했고, 그 공간에서 책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책과 문구류를 판매하기도 한다. 집에서 일할 때와는 다른 동력이 공간이 생긴 뒤 찾아왔다.

 

생각의뜰채 작업실 & 쓰는 감각을 돕는 큐레이션 편집숍 ‘Dayspring’

 

경북 영주에서 진행된 엄마의 브랜드 vol.1첫 북토크

출판사를 열고 처음 쓰고 만든 책은, 시리즈 기획 인터뷰집 『엄마의 브랜드 vol.1』이다. 총 3권으로 기획한 이 책은 작년 12월 27일 출간되었는데, 올 6월 30일 경북 영주에 있는 STAXX에서 처음으로 북토크 제안이 왔다. STAXX에서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담당하는 매니저가 내 책을 읽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비즈니스 감각 쌓기’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BOOK STACK’ 프로그램에 첫 강연자로 나를 초대해준 것이다. 유명한 저자도 아닌 내 책이, 강원도 원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3040 세대 엄마들의 이야기가 경북 영주에까지 가닿았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영주에서 창업을 시작했거나 도심을 벗어나 귀촌했거나 이직한 청년들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공감하며 듣고 배울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를 계기로 원주와도 멀지 않은 경북 영주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좋아진 건 안 비밀이다.

 

경북 영주 STAXX 3층 라운지에서 진행된 <엄마의 브랜드> 북토크

 

매주 월요일, ‘요즘 청소년을 만나는 기회

 

2학기가 시작된 8월 21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2시간은 원주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진로, 직업 강의로 중학교 1학년생들을 만나고 있다. 작년부터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진로, 직업 강사로 활동하면서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 탐구심을 갖게 되어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학교 환경과 교육 제도, 빠른 사회기술의 변화도 놀랍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꿈을 꾸며 어떤 말과 태도로 생활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매주 새롭다. 물론 목도 금방 쉬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청소년 시기에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탐색해보고 그것을 진로와 직업으로 설정해보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걸 청소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나도 너희 때는 부모님 속도 썩이고 공부도 안 하고 연예인 좋아하느라 바빴다’라는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풀어지는 걸 보면, 어떤 어른 한 명쯤은 ‘실수해도 괜찮아. 놀아도 괜찮아. 공부 못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걸 해.’라는 말을 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산 영도에서 펼쳐진 전국 문화 기획자들의 항해

 

9월 8-10일에는 부산 영도에서 열린 ‘전국 문화도시 박람회 & W.W.W 쇼케이스’ 행사에 참여했다. 전국 문화도시 박람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 팀의 문화기획자들이 영도 물양장 일대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서로의 활동과 궤적을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2박 3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모두를 알아가는 건 불가능했으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쇼케이스 행사는 총 6개 파트로 나뉘어져 진행되었고, 나는 ‘실천의 바람’ 파트장을 맡아 워크숍도 진행하고 운영팀과 참여팀들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무엇보다 그동안 혼자 일해왔던 나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해소하고, 앞으로 ‘생각의뜰채(Dayspring)’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98-10일 영도에서 열린 전국 문화도시 박람회 & W.W.W 쇼케이스현장

 

다른 이의 글을 책으로 엮는 일

 

올 상반기에 강원도의 감각을 표현하는 로컬매거진 <GAK>을 정식 창간하면서, 다음 스텝으로 외부 저자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출판사에 다닐 때는 편집자로 내가 맡은 책의 여러 저자들을 만나왔지만,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내 책이 아닌 다른 저자의 책을 낸다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10월 25일 같은 날 2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한 권은 기획출판으로 한 권은 자비출판으로 계약을 맺었고 책의 분야와 형태도 에세이와 숫자 악보 엽서북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도전이었다. 내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면, 다른 이의 글을 책으로 엮는 일은 저자와 편집자 공동의 몫이자 출판사 대표로서 져야 하는 책임도 막중한 일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은 언제나 긴장과 실수로 인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 일을 잘 끝마쳤을 때 마주하는 성취감과 자신감, 겸손한 마음은 나를 더 성장케 하는 자원이 된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두 권의 책이 널리 읽히길 바란다.

 

 

생각의 뜰채 신간도서 2종 표지

 

경남 거창군에서 만난 인연

 

올 초 ‘로컬초년생 커뮤니티’를 통해 경남 거창군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될농> 팀으로부터 강연 제안을 받았다. 지역의 청년, 창업가들과 심포지엄 형태의 행사를 기획하고 있는데 도의 예산과 지원이 필요한 일이라 언제 성사될지 모르겠다는 연락이었는데, 지난 10월 27일 <지역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려 거창군에 다녀왔다. 2시간 중 1시간은 3명의 지역 활동가가 20분씩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1시간은 3명의 지역 활동가와 참여자들이 3개의 세션으로 나뉘어 20분씩 이동해가며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연자와 참여자 모두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신선하고 알찬 구성이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강연자들은 각각 농업 브랜딩, 글쓰기와 출판, 관광자원 스토리텔링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는데 듣다 보면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었고, 그것이 참여자들에게도 하나의 방점을 찍는 역할을 했다는 게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을 돌아보니 이렇게나 많고 넓다. 지역에서 글쓰기로 먹고산다는 것은 단번에 큰돈을 내게 벌어다 주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이 확장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확신을 준다. 일에 대한 감각과 생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평생 일하며 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원주문화웹진 외부필진 권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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