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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부딪히기, 의식하기, 그리고 확신과 단언을 유폐하기

부딪히기, 의식하기, 그리고 확신과 단언을 유폐하기

연극연출가 김미란 인터뷰

 

김미란 연출가

 

질문은 너무 거창했고, 그 거대한 물음표에 깃든 헛바람을 빼주는 답변이 이어졌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계속 ‘의도’를 물었고, 그 의도에 깃든 세밀한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그리하여 이 ‘기획’에의 대단함을 도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인터뷰이(interviewee)는 그러한 의도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존재할 수 없었음을 말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작업을 결괏값으로만 만들지 않았다. 그는 틀어지는 계획, 그리하여 치밀한 기획은 온전히 수행될 수 없었음을 줄곧 말했다.

연극연출가 김미란과의 인터뷰 이야기이다. 올해의 달력이 일곱 번째 넘겨지던 날,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김미란 연출가를 만났다. 연극 <영지>가 국립극단 소극장판에서 막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 연출은 연극 <간이연극: 그레고르 잠자>, <좋아하고 있어>, <영지> 등을 연출했고, 지난해에는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이하 <실패담>)을 통해 58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젊은연극상을 수상했다.

너무 매끄럽거나 뭉특하여 그 어떤 답변도 되지 않는 대답보단, 다소 투박하고 불편하더라도 그 물음표가 생성된 배경 자체를 응시하기 위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돌아가기, 기다리기, 정정하기 등 그의 응답은 매끄러운 답변-되기를 벗어나 다소 거칠더라도 대화-하기를 좇는 듯했다.

연극 <실패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애와 예술’이라는 주제를 응시해야 하는 연극이기에 ‘배리어프리 연극’이란 어때야 하는지를, 그 미학적 완성도나 치밀한 접근성 채널에의 ‘완수하기’를 택하지 않는다. 무대에는 청인 배우와 농인 배우가 한 명씩 등장하여, 각각의 언어(한국 음성언어와 한국 수화언어)로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연극-만들기 그 자체가 연극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 완성태란 없을 테니까.

아래는 그날의 대화를 몇 가닥을 중심으로 다듬어낸 내용이다. 인터뷰 기사 한 편의 통일성을 위하여 편집이 가해졌고, 이 편집 방향성에 대해선 인터뷰이였던 김미란 연출가와 합의된 내용들임을 미리 밝혀둔다.

 

연극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공연 사진 ⓒ 국립극단

 

이제 국내 공연계에서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 된 것 같다. <실패담>은 특히 농인 배우와 관객들을 세밀히 의식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는데.

<실패담> 후 많은 분들이 배리어프리에 대해 물어보시던데, 부끄럽더라. 실상 나보다 오래 고민해온 분들이 많다. 지영 씨(<실패담>에 출연한 농인 배우)와 작업할 때는 농 관객 분들만 고려했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다. 지영 씨를 보러올 농 관객을 떠올리며 작업을 한 거다. 이번에 <영지>를 올리면서 처음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이 이 공연을 보러 오신다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 같다. 이것도 내가 했다기보다는 선혜 작가님(연극 <영지>의 허선혜 작가)이 경험이 많으니. 작가님의 작업방식을 배우는 것에 가까웠다. ‘계속 고민해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정말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실패담>이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그 자체를 재현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연극이 만들어지던 과정이 궁금하다.

<영지>를 만들 때 수어 노래 장면을 삭제하면서 새로이 의식하게 된 지점이 있었다. 공연은 끝이 났지만, 해결하지 못한 그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 건지, 어떤 지원을 받으며 어떤 공연으로 만들 수 있을지 찾고 있었다. 그때 국립극단의 ‘창작공감: 연출'(2021년 주제는 ‘장애와 예술’) 공지를 보며 자연스레 지원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 작업이 정말 ‘장애와 예술’이라는 주제에 꼭 들어맞는 것인지에 대해선 우리 팀 전부가 고민이 많았다.

선정된 후, 6개월의 개발 과정을 거쳤는데 이 과정서 많은 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배리어프리 공연 관련 강의들을 듣거나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나갔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건 지영 씨와의 만남이었다. 지영 씨를 만나면서 우리 공연의 방향성을 찾아갔다. 이전에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결과보고서>(2019)라는 다큐멘터리 연극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계획은 늘 세우지만 실제로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이번 작업서도 계획을 늘 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결국 부딪혀보며 생긴 것들이 연극이 되었다.

 

직접 부딪혔던 지점을 공연서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여러 워크숍 장면 중에서도 움직임 워크숍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원준 배우(<실패담>에 출연하 청인 배우)와 지영 배우가 서로 처음 만난 것은 수어 워크숍에서였다. 움직임 워크숍이 그들의 두 번째 만남이었을 것이다. 각자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니 서로 몸을 부딪히다 보면 아이스 브레이킹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움직임 워크숍을 했었다.

지영 씨는 늘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본인도 농사회에서는 개인이며, 개개인은 다 다르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박지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공연에 ‘농인 배우에 관한’ 규칙이 아니라, ‘박지영에 관한’ 규칙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이원준에 관한’ 규칙들이 박지영의 규칙과 만나며 새로이 생기는 지점들이 생기고.

원준 씨는 과감하고 특이한 사람이다. 움직임 워크숍에서 재밌었던 것은, 배운 지 한 달밖에 안 되는 수어로 원준 씨가 “너 나 못 믿냐”고 지영 씨에게 당당히 묻던 모습이었다. 많이 웃으면서 원준과 지영이 배우로서 만나게 되었다. 이 워크숍은 몸풀기도 하고 (서로의 영역에) 접촉하기도 하고, 둘이서 뭔지 모르는 것들을 움직여가는 시간이었다.

 

김미란 연출가

 

<실패담>에 참여한 배우들과 수어통역사 등 입을 모아 말한 것은, 김 연출이 이 다채로운 구성원들 간의 소통 과정서 다양한 사정을 배려해주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 연출은 본인의 공연을 보러올 당사자 관객들을 배제하지 않으려 무척 애쓰는 듯하다.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정말 함께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외국에서 연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지영 씨 친구나 아는 분들, 농사회에 속하신 분들이 오신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이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많은 수어통역사 분들이 팀 단위로 참여하셨는데, 그분들이야말로 어떤 점에서는 큰 배려를 해주셨다. 노동의 양이 결코 적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혹은 지영 씨가 하고픈 방향을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상당 부분 맞춰주려 하셨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각자에게 맞는 합을 찾아가는 일이 필연시되는 시공간에서도, 사람과 사람 간의 마찰음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는 듯하다. 국립극단서 발간한 2021 창작공감: 연출 기록집의 박지영 배우 인터뷰 중에는 수어통역 과정상에서 일어나는 간섭이 언급된다. 현장에도 이와 관련된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간섭이란 무엇인가?

나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게 아닐까.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은 수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원어민)다. 그러나 (수어가 음성언어로 통역되는 과정에서) 본인이 신뢰받지 못한 순간이 있었던 것 아닐까, 라고 짐작하고 있다. 실제 그 말을 내뱉은 사람보다 그 말을 통역하는 이를 신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함이 아닐까. 통역이나 번역은 해당 언어를 후천적으로 배운 사람들일 텐데, 농인의 언어가 좀 더 신뢰받는 환경이 필요하단 말로 이해했다.

 

최근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피해자 재현 문제부터, 소설계 아우팅 문제까지. ‘당사자 재현에 대한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그런 작업을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당사자 분들이 창작과정에 들어오시는 것을 선호한다. 꼭 무대에 서는 게 아니더라도. 나 또한 지영 씨를 만나기 전에는 책을 많이 읽었었다. 그런데 만나고 나선 ‘왜 그렇게까지 고민했지? 만날걸. 진작 만났어야 했는데’ 싶더라. 만나면 내가 해야 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왜 돌아왔나 싶었다. 결국엔 가장 명료한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분들인 것 같다. 앞으로의 작업에선 당사자 분들의 피드백을 더 받고 싶다. 공연 후의 피드백이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받는 피드백 말이다.

 

연극 <영지> 공연 사진 ⓒ 국립극단

 

최근 공연 <영지> 또한 접근이 굉장히 섬세했던 듯하다. 어린이 관객을 대하는 톤도, 어린이를 등장인물로 내세워 만들어가는 인물상도.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덕분이다. 직접 어린이,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 그 만남의 순간들이 작품의 전환점이 된다. 대본에서 묘사하는 인물과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실제로 만나며 연극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이전 <영지> 작업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두 초등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오셔서 저희 연습을 보고 갔었다.

실은 장면 시연에 대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훨씬 재밌게 들어주더라. 어린이청소년극을 작업할 때는 그들을 직접 만나면 해결되는 게 많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오히려 “아니요, 너무 이해가 되는데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도 있고, 꽤 자신 있던 부분에선 “이해 안 돼요”란 피드백을 받을 때도 있다.

 

인터뷰어로서 나 또한 늘 의식하는 지점이다. 인터뷰이(당사자)들의 로 옮기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편집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어서 가능한 것들이 글로 옮길 때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읽힐 만한 글로 만들기 위하여 가하는 편집들이, 인터뷰이들의 말에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은 아닌가 늘 걱정이 된다. 김 연출은 당사자들의 자기 재현 작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던 듯하다.

버베이팀 시어터(verbatim theatre) 팀들의 작업물을 많이 찾아봐 왔다. 버베이팀 작업에서는 당사자들의 언어를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배치’만 한다고 하더라. 그것이 그들의 윤리라는 것이다. 말을 손보지 않는 것, 심플한 윤리였다. 이 지점이 잘 서는 순간 많은 것들이 해결되더라. 그들의 언어를 지우지 않으려는 룰을 세우는 것이다. 물론 아직 서툴지만…….

그분들이 내 공연 보면서 상처받는 순간이 없는가, 묻는다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당사자 분이 무대에 선 작업을 꽤 해왔다 보니 그런 지적을 받은 적도 있다. 실은 당사자가 직접 무대에 서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비겁한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설명’이 중요한 것 같다. 이 작업에서 당사자 본인이 무엇을 하게 될 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경우엔 첫 미팅을 가질 때 그 지점을 무척 중요시한다. 아주 자세하게, 당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설명하는 과정 말이다. 실제로 내가 직접 섭외하지 않은 당사자들의 서사를 풀어갈 때는, 약간 내 스스로의 윤리적 기준에서 충족되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극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내 다큐 작업에서는 이 지점이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 되겠구나 싶었다.

공연계 종사자들은 내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앞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하게 될지 쉽게 예측한다. 직업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곳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은 그 짧은 언어들로 자신이 뭘 하게 될지를 저절로 알기는 어렵다. 난 항상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마지막에 “와! 이런 공연인 줄 몰랐어요!” 하신다(웃음). 그럴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설명해야 된다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그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이 가능해지려면, 애초 프로덕션 단계에서 기획과 계획이 매우 세밀하게 전제되어야 되지 않나? 그러나 작업은 실상 현장에서조차 변해가지 않나.

그분들께 “변해가도 되냐, 변하게 된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이고, 이 부분은 꼭 필요하고” 등 앞서 말했다시피 초반 과정에서 작업의 의도와 과정을 잘 설명했다면, 정말 필요한 변화를 말할 때도 타당한 논리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변화를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면 제가 납득하기도 한다. 그분들이 원하지 않는 것들은 절대 담지 않으려 한다. 끊임없이 ‘주고받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려워지면 그분들에게도 상처겠지만 나에게도 상처가 되더라.

 

더욱 다음 작업이 궁금해진다. 올해 어떤 작업들을 앞두고 있나?

9월 첫 주 국립극장에서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0~3세 관객을 위한 작은 쇼케이스>,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걸쳐 나온씨어터에에서 연극 <다른 부영>이 올라간다.

 

글/원주문화웹진 전문필진 장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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