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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빈 캔버스에 생각을 추상화로 펼쳐 그리는 오랜새벽 이혜윤 작가

[원주의 엄마 예술가. 02]

빈 캔버스에 생각을 추상화로 펼쳐 그리는

오랜새벽 이혜윤 작가

 

<편집자 주> 원주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며, 여성들의 서사에 귀를 기울이는 편집자이자 『엄마의 브랜드 vol.1』을 출간한 필자는 [원주의 엄마 예술가] 코너를 통해 원주에서 엄마로, 예술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빈 캔버스에 자신의 생각을 추상화로 펼쳐 그리는 이혜윤 작가. 지난 5월 3일부터 2주간 강릉 소집 갤러리에서 ‘쓸모의 균형’ 개인전을 펼친 이혜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무게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를 쓰며 버텨내던 시기를 지나 결국엔 욕심을 비워내고 나니 저울질 없이도 균형을 찾게 됐음을 이야기한 이 작가는 최근 치악산 길카페 인근에 ‘사유림’이라는 화실 겸 소품숍을 열었다. 새롭게 문을 연 그곳에서 이 작가는 어떤 그림과 이야기를 펼쳐나갈까. 궁금해 하며 그곳을 방문해 이혜윤 작가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물어보았다.

 

1.이전에 스튜디오 무제라는 공간을 운영한 거로 아는데, 이곳으로 이전한 건가요?

 

네, ‘스튜디오 무제’는 제가 처음 원주 와서 작업실 겸 사무실로 사용한 공간인데요. 저 포함해서 4명의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 사용해서 이름이 ‘스튜디오 무제’였어요. 각자 사정으로 나가게 되고 1~2년간 혼자 사용하다 월세 올려달라는 말에 새로운 공간을 찾게 되었어요.

 

2.이전하면서 공간의 이름도 사유림으로 새로 지었나 봐요.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사실 이곳의 정체성을 아직 확실하게 정하진 못했어요. 예술 공간으로 계속 사용할 예정인데요. 현재 이곳에서 수업을 두 개 하고 있고, 예술서적과 예술상품들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해요. 공간 활용에 있어서는 저 혼자 작업하는 공간보다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건 분명해요. 카페처럼 아주 개방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그림이든 책이든 아이들 놀이터든 매개가 되어서 이 공간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3.이 공간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아서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거 같아요. 작가님은 오랜새벽대표이기도 한데요, 오랜새벽은 어떤 회사인가요?

 

오랜새벽은 5년차 된 법인인데요. 제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4학년 때부터 국제개발 NGO에서 일을 했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현장근무도 하고 1년 정도 미국에서 그림 그리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는데 벽화 봉사 활동이 인기가 많을 때였어요. 그런데 실제 현장을 보니 실질적으로 봉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해보이더라고요. 도안도 만들어주고 벽에 맞춰서 어떤 재료로 그릴지 알려드리는 걸 목적으로 회사를 창업했어요. 정부지원도 받고 상도 받고 팀원도 늘어났었는데 벽화 봉사에 대한 부작용 이슈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아무도 벽화를 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흘러갔어요. 그러다 제가 결혼과 임신으로 원주에 이사 오게 되면서 서울의 일들을 정리하게 됐어요. 그땐 제가 쌓아왔던 게 서울에 있으니 단절될 거 같단 생각에 꽤 불안했던 기억이 나요.

 

 

4.서울에서 창업해서 회사를 운영하던 대표였으니 결혼과 임신으로 낯선 원주에 왔을 땐 그 불안감이 더 컸을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원주에 와선 어떤 일들을 이어갔나요?

 

나의 쓸모와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성과가 필요했고 원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했었어요. 커리어와 육아 모두 불안했던 시기였는데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게 일이었어요. 오랜새벽의 정체성은 문화기획 쪽에 있어요. 강의든 문화기획 일이든 오랜새벽이 원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려고 했죠. 둘째 낳고는 ‘초점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어요.

 

5.그림 그리는 작가 엄마로서 같은 위치에 있는 여성 창작자들, 부모에게도 관심을 계속 기울여온 거 같아요. ‘동쪽의 엄마들이나 최근 시작한 데굴데굴 빌리지등의 프로젝트를 보면요.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원주에 사는 엄마 창작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리끼리만 힘든 얘기 나누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들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게 ‘동쪽의 여자들’ 프로젝트예요.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사람들 중 주로 더 만나게 되는 사람들끼리 주말마다 만나 함께 공동육아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놀게 됐어요. 주말에 하루 종일 아이 보는 게 쉽지 않은데 함께 만나면 덜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한번 사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 만나게 되었고 개인적인 문제들의 해결로 찾아 나선 여정이 ‘데굴데굴 빌리지’예요. 저는 이걸 통해서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느낌이에요. 혼자서는 힘들지만 함께 공동 육아를 했을 때는 그 힘듦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봤고 그 가설을 증명하고 싶은 프로젝트기도 합니다.

프로젝트지만 일의 영역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부담도 없었으면 좋겠어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멤버들과 열린 마음으로 만나고 있어요. 이렇게 같이 모이면 훨씬 육아가 편해진다는 것과 공동체성으로 개인이 고립되어 겪는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모두에게 있었죠. 아이들의 놀이도 장난감이나 키즈카페 등 소비해야 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일쑤인데, 여럿이 함께 모여 놀면 자연에 있는 모래, 삽, 물 가지고도 자기들끼리 잘 놀더라고요. 아이들 연령대도 3세부터 7세까지 또래들이라 매주 모여서 1차로는 제 작업실 놀이터에서 놀고 2차로는 수변공원에 가서 놀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6.함께 육아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건 큰 복이죠. 모두 부모니까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한 육아관이나 가치관에 대해서도 나누게 되겠어요.

 

맞아요. 모두 부모니까 우리보다 미래세대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서로 고민을 나누게 돼요. 사회의 시스템이 보다 나은 쪽으로 보장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환경에 대한 고민도 스스럼없이 나누고 있죠. 고립되어 있지 않으면 부모들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 같아요. 우리가 함께 노는 걸 계속 보여줄 수 있도록 각자 특기들이 있으니 하나씩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고요. 문화예술교육 영역의 연구 모임이기도 해요. 이 모임을 통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것, 또 나 자신에게 행복한 것들을 계속 찾아 나갈 거예요.

 

 

7.두 아들의 엄마로 일과 육아를 양립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가지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것이 양립의 근간인 거 같아요. 그걸 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된 것 같아요. 아이들도 각자 우리의 가족 구성원으로 자연스레 견뎌야 되는 것들이라고 느끼거든요. 같이 집에서 오랫동안 놀아주거나 챙겨주진 못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각자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아이들도 각자의 시간과 역할을 자연스레 자기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미안함을 느끼는 순간 균형이 깨질 거라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예술가의 특성이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좀 반대쪽에 있는 모습이 많은 거 같아요. 자유분방하고 충동적이기도 하고요. 그런 요소들이 예술가로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엄마가 되면 그런 모습이 아예 있으면 안 될 것 같잖아요. 그 갭이 커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대로인 엄마여도 괜찮다고 많이 생각해요. 장점이나 단점의 크기가 다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요. 스스로의 나를 좀 더 인정할 수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당당하게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첫째 아이와 히말라야에 트레킹을 다녀왔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걸 아이가 스스로 되게 잘했어요. 그때 함께 경험한 게 너무 좋아서 누군가가 봤을 땐 무모한 거 같아도 우리 관계에선 우리만의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 여행을 통해서 내가 나인 채로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겠다 확신하게 됐어요.

 

8.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내 아이와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게 된 건 참 큰 수확이네요. 모든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할 테고요. 현재 작업하고 있는 작품이나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올해 개인전 하나를 준비하고 있고, 할매발전소와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에요. 또 오랜새벽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해볼 계획을 갖고 있어요. 같이 일할 팀원이 한 명 생겨서 문화기획 말고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오랜새벽의 목표가 ‘매일 벽이 아닌 영감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건데요. 그 벽이 물리적인 벽일 수도 있고, 차별이나 장애물 같은 관념적인 벽일 수도 있는데요. 그런 벽들을 계속 허물어가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엄마인 정체성이 커서 엄마들이 행복할 수 있는 역할도 기여하고 싶고요. 저에게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계속 연결되는 일을 앞으로도 하게 되겠죠. 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글.사진/원주문화웹진 외부필진 권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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