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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2020


사랑은 지옥에서 온 걔

 

사랑¹ [명사] (파생어: 사랑-하다)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그러니 사랑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나를 사랑하는 일에도 ‘나’를 바라보는 ‘나’가 또 필요하다는 것.

 

흔히 사랑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주 작거나 매우 커서. 수가 적거나 많아서. 한때라서. 한때일 뿐이지만 영원을 믿을 수 있는 것이라서.

어쩌면 답이 없기 때문에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답이 너무 많아서 사랑을 알아채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가끔 어떤 정의는 바다 안에서 애써 한 방울의 물을 골라내려는 노력 같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굳이 그런 일에 힘을 썼다. 시키는 공부를 하든 친구들과 종일 놀든 집에 돌아오면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에 열렬히 마음을 쏟아내 보고 싶었다. 과외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그것을 꿈이라고 이해했다. 어른의 꿈이란 직업에 연결되는 현실과도 같았다. 내게 하고 싶은 일이 없는지, 좋아하는 일이 정말로 하나도 없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런 게 정말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내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했다. 살면서 얻게 될 여러 경험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학교공부도 여러 경험 중 하나라고. 문제집부터 사랑해보라고 했다. 선생님, 그게 제일 어려운데요. 마음에 뭐가 걸린 채로 계속 문제를 풀었다.

 

일, 친구, 연애, 취미, 그 밖의 많은 것들. 나는 어디에서나 사랑을 찾았다. 어디에 사랑이 있을까. 내가 무엇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사랑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나의 둔감한 촉으로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

 

셀 수 없는 사랑 중에서 그래도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사랑은 긍정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따뜻한 사랑. 기쁜 사랑. 달콤한 사랑. 반대로 괴로운 사랑.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 유령 같은 사랑. 90년대 유행하던 발라드가 말하듯 사랑은 슬픔과 고통 속에도 있다. 심지어는 기쁨이나 슬픔 또한 단색이 아니다. 마구 섞여버리곤 한다. 아파도 눈물이 나고 좋아도 눈물이 난다. 부끄러워도 심장이 뛰고 힘들어도 심장이 뛴다. 이유는 달라도 결론은 사랑이다.

 

 

한 번은 사랑하는 것의 목록을 작성해본 적이 있다. 엄마. 아빠. 가족. 친구. 문학. 문학에 가지를 뻗어서 시. 산문. 소설. 소설 중에서도 추리소설. 음악. 음악에 줄을 치고 아래에 알앤비. 펑크. 재즈. 커피. 커피하면 떠오르는 홍대 탐앤탐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맛은 잘 모르고. 커피샵을 사랑함. 합정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할리스도 사랑. 마찬가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쓴맛 신맛 차이 구분할 줄 모름. 연인. 헤어진 연인. 가끔 떠오르지만 연락하지 않는 관계로 충분함. 옷. 검은색 옷 좋아함. 사시사철 그러함. 고기. 치즈. 미국 음식 취향. 미국에는 가본 적 없음. 잠. 자는 것 좋아함. 게으름을 좋아함.

 

특별히 나에 대해 생각하며 쓰진 않았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의 목록에는 내가 있었다.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인 것. 나는 나의 몸과 마음에 사랑을 수집하고 있었다.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인가와는 별개로.

사랑은, 언제나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지은의 노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가 떠오른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곡이다.

사랑에 서투른 만큼, 그 서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꾸 스스로의 발밑을 확인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의 보폭과 속도를 신경 쓰다가

눈앞에 있는 대상과의 거리는 재지 못하는 일.

 

사랑을 실패하게 하는 건 눈을 감고 혼자 사랑이라는 괄호를 만들어버리는 ‘나’일 것이다.

괄호 안에 들어오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 곡을 쓰는 일은 그런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사랑이다’보다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는 발악에 가까울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사랑의 자리에 무엇이라도 올 수 있듯 사랑의 반대말에도 아무거나 올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직장 또는 학교에서, 사람 관계에서, 홀로 있는 방 안에서. 사랑을 믿으면서 동시에 사랑을 의심하는 것.

처음부터 사랑이 없다면 좋지 않을까. 나아지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행복과 불행을 함께 몰고 온다. 내가 사랑하는 ‘그것’이 없다면 인생에 한 번뿐인 좋은 일도 이렇게 힘들 일도 없을 테지만, 사는 대로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를 그냥 사는 대신 살 수밖에 없게 한다.

 

 

이 글의 제목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걔”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에서 따온 것이다. 개나 걔나. 지옥에서 온다. 사랑이나 사람이나. 지옥이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지 지옥이 있다는 사실만 상기시켜주려는지는 알 수 없어도. 지옥에서 온다.

사랑은, 그렇다고 한다.

 

글 : 구현우 시인(2014 문학동네 신인상)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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